추자도 추자처사각, 바다와 바람 속에 깃든 학문과 고요한 정신의 공간
잔잔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추자도의 아침이 열렸습니다. 선착장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자, 바다를 향해 단정히 서 있는 ‘추자처사각’이 보였습니다. 바람에 소금기가 섞여 코끝이 따끔했고, 돌담 너머로 하얀 기와지붕이 햇살을 받아 은은히 빛났습니다. 이곳은 조선 후기 학자 김약연 처사가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던 곳으로, 추자도의 정신적 중심이 된 건물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고요한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대문을 지나 안마당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나무의 향기가 퍼졌고, 마당 한가운데 놓인 우물 옆에 앉아 있자 세월의 결이 천천히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1. 섬마을 오솔길을 따라가는 길
추자처사각은 추자면 예초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추자항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거리에 있으며, 내비게이션에는 ‘추자처사각 국가유산’으로 검색 가능합니다. 선착장 주변의 골목길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길 양옆으로 돌담이 이어지고 바람이 세게 붑니다. 이 길은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지만, 대신 걷는 동안 마을의 소리와 향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길모퉁이를 돌면 기와지붕이 살짝 보이고, 그 아래로 조용히 앉은 처사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르는 길이 약간 가파르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푸른 바다 덕분에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섬 특유의 고요함 속에서 천천히 도착하는 그 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여정이었습니다.
2. 돌담과 기와가 어우러진 전통의 구조
처사각의 건물은 전형적인 제주 전통 양식으로, 낮은 돌담 안에 목조 기와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네모 반듯한 마당을 중심으로 정면에 ‘처사각’ 현판이 걸린 본채가 있습니다. 현무암 기단 위에 세워진 나무 기둥은 시간이 지나 어두운 색을 띠고, 처마 끝에는 새 모양의 장식이 남아 있습니다. 지붕의 기와는 비바람에 닳아 표면이 매끈하지만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면 안쪽에는 넓은 마루가 있고, 그 위로 부드러운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왔습니다. 마루 끝에 서면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입니다. 집의 구조가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 설계된 듯, 어느 방향에서도 공기가 막히지 않았습니다. 자연과 건축이 자연스럽게 맞닿은 형태였습니다.
3. 학문과 절개가 깃든 공간
추자처사각은 조선 후기 유학자 김약연 처사가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섬에서 학문과 덕을 전하며 지역민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처사각 내부에는 그의 시문과 행적을 기록한 목판이 보관되어 있고, 벽면에는 후손들이 남긴 글귀가 걸려 있습니다. ‘학문은 바다와 같고 덕은 산과 같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바다를 바라보는 집의 위치가 그 문장과 닮아 있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한 사람의 거처가 아니라, 학문과 인품을 함께 기리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정성껏 지켜온 이유가 느껴졌습니다.
4. 보존과 관리, 그리고 마을의 손길
처사각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며,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청의 정기 점검을 받고 있습니다. 울타리 주변에는 잔디가 짧게 다듬어져 있고, 마당에는 잡초 하나 없이 깔끔했습니다. 입장료는 없으며, 낮 시간대에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방문객이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를 수 있도록 작은 안내문이 놓여 있습니다. 처사각 옆에는 오래된 팽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 나무 아래 앉으면 시원한 바람과 나무 냄새가 어우러졌습니다. 관리가 과하지 않아 오히려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돌담에 닿는 바람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처럼 들렸습니다.
5.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추자의 역사 공간
추자처사각을 둘러본 뒤에는 근처 ‘추자향교’를 함께 방문하면 좋습니다. 도보로 약 10분 거리로, 섬의 유교 전통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또한 ‘추자진성’과 ‘제주4.3 희생자 위령비’가 인근에 있어 역사와 기억이 겹쳐지는 여정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머물기에는 ‘예초리 전망대’가 좋습니다. 이곳에서는 추자 앞바다의 섬들이 줄지어 보이며, 석양 무렵에는 붉은 빛이 수평선 위로 길게 펼쳐집니다. 마을 아래로 내려오면 작은 카페들이 모여 있어 차 한잔하며 여유를 즐기기 좋습니다. 섬 특유의 느림과 정적 속에서 하루가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역사와 풍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섬의 시간입니다.
6. 관람 팁과 느껴지는 인상
추자처사각은 오전보다는 오후에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쪽으로 떨어지는 햇살이 마당을 부드럽게 감싸고, 기와의 색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잦은 지역이므로 겉옷을 챙기면 좋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돌담 위로 빗물이 흐르며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마당의 우물과 본채를 함께 담으면 조선시대 고택의 정취가 잘 살아납니다. 조용히 둘러보며 마루 끝에 앉아 있으면, 바다 건너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학문을 닦던 사람들의 숨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랜 품격이 머무는 공간이었습니다.
마무리
추자처사각은 작은 섬의 한켠에서 시간과 정성이 쌓인 공간이었습니다.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그가 남긴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유산이었습니다. 돌담과 기와, 마루와 바람—all이 어우러져 고요한 품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돌아서는 길, 대문을 나서며 뒤돌아보니 처마 끝에 맺힌 빛이 금빛으로 번졌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세월을 견뎌온 학문의 불빛처럼 느껴졌습니다. 섬의 바람은 여전히 그 집을 감싸고 있었고, 그 안에는 예전의 숨결이 고요히 머물고 있었습니다. 추자의 시간은 그곳에서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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